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계 미국인 (문단 편집) == 상세 == 19세기 초 최초로 [[존 만지로]]가 미국에 다녀온 이후 [[일본인]]들은 일찍이 19세기 말부터 12만 명이 [[미국]]과 [[남아메리카]] 등으로 이주했다. 그 때문에 [[한국계 미국인]]보다 커뮤니티의 역사가 깊고 4세대, 5세대까지 등장했다. '4세'대를 욘세이(Yonsei) 라고 하는 등 용어도 있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일본계 미국인의 숫자는 '''1,469,637명'''이라 하며 [[https://en.m.wikipedia.org/wiki/Japanese_Americans|#]] 미국 인구의 '''0.44%'''이다. '''1,822,213''' (2015)명[* 미국 인구의 '''0.56 %''' 이다. 재외국민까지 합하면 '''2,546,982''' (2019)명이다. 미국에서 중국계, 인도계, 필리핀계, 베트남계 다음으로 다섯번째로 큰 아시아계 커뮤니티이다. 국외를 통틀어 가장 큰 한인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 인 [[한국계 미국인]]보다는 적지만 더 오랜 기간 동안 [[미국]] 사회에서 살아왔던 탓에 커뮤니티의 파워는 더 큰 편이다. 특히 [[하와이]]에서는 [[필리핀계 미국인]]과 같이 텃세가 심하기로 유명하다. 다른 한 편으로 일본 본국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미국에 새로 유입되는 숫자가 빠르게 줄었고 [[한국계 미국인]], [[중국계 미국인]]보다 동화된 기간이 길다. 일본이 이미 한국,중국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유입되던 시기인 1960~70년대에 이미 중진국이었기 때문에 미국으로 가는 일본인들은 거의 없는게 당연했다. 2019년 기준 일본계 미국인 중 27% 정도만이 미국 밖에서 태어났는데 이는 아시아계 미국인 중 가장 낮은 수치이다. (아시아계 미국인 평균 57%) 일본계 미국인은 다른 동북아시아 출신 미국인과 비교할 때 눈에 띄게 다른 민족 그룹과의 통혼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민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고, 1960년대 이후로 고도경제성장이 진행되면서 일본계 이민자 유입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미 1970년대에 선진국 라인에 들어갔으며 그 이후에는 버블경제가 있었고 버블이 붕괴해 1990년대에 경제가 어려웠었지만 1960년대 한국, 중국만큼 기초적인 생계마저 위태로울 만큼 경제가 막 어려운 것도 아니라서 미국으로 이민가는 이민자수가 썩 많지가 않았다. 2010년대 와서는 오히려 미국으로 유학가는 경우가 적어 해외에서 경험쌓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일본 기업에서 토로할 정도. 반면 한국, 중국, 필리핀 같은 아시아 국가들은 독재, 가난 때문에 어렵게 미국으로 이민가는 경우가 흔했으며 지금도 병역 문제 때문에 일부 한국인들은 아들이 군대 가는 걸 원치 않아 괌, 하와이 같은 미국 땅에 가서 원정 출산을 하거나 이민을 가는 경우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일본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워 미국 같은 이민 국가에 정착하는 비율은 매우 낮아졌다. 고령화도 일본계가 아시아계 미국인 중에서 가장 심하여 2019년 기준 일본계 미국인의 중위 연령은 41세이고, 미국 태생 일본계 미국인의 중위 연령은 36세였다. 일본계 미국인은 [[이민]] 역사가 길어서 뿌리인 [[일본]]보다는 현 거주지인 [[미국]]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하다. 또 과거 미국과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치렀던 탓에 그 사이에서 고래 싸움에 끼인 새우마냥 [[행정명령 9066호|많은 수난]]을 당한 적이 있다. 때문에 스스로를 [[일본인]]이 아닌 [[미국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 커뮤니티이다. 심지어 [[한국계 미국인]]이나 [[중국계 미국인]]과는 달리 일본계는 3세대, 4세대부터는 [[일본어]]조차도 못하는 경우가 흔하고 영어 구사율이 약 85%이다. 종교도 기독교 인구가 1% 전후인 일본과는 달리 절반 가까이가 기독교인이다. 이민 1세대의 종교는 대체로 [[불교]]신자이거나 [[무종교]]인이다. 게다가 일본계는 한국계 지휘관의 지휘를 받은 것도 있고... 한편 [[진주만 습격]]을 준비할때 스파이 활동으로 엄청난 공을 세운 [[https://en.wikipedia.org/wiki/Takeo_Yoshikawa|요시카와 타케오]](吉川猛夫)[* [[일본 해군]]의 정보 장교이고 하와이 주재 일본 영사관으로 배치되었을 때는 '''모리무라 타다시'''라는 이름으로 침투했다. 일본군이 진주만 습격 훈련과 실제 작전할 때 참고했었던 지도를 이 사람이 제작을 했고, [[하와이]]에 소규모이지만 간첩망을 만들어 태평양 함대의 움직임까지 알아내 보고를 했다. 그리고 그의 스파이 활동은 매우 교묘해서, [[FBI]]가 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진주만 습격]] 후 체포했는데도 스파이 활동은 증거가 없어 기소하지 못했다. 1942년 08월 미일 양국의 외교관 교환 때 일본으로 추방됐다.]는 본국에 보내는 무전에서 하와이에 있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일본인 기준에서) '''쓰레기'''라고 불렀고, 전쟁이 시작되면 이들은 바로 미국 편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주장을 보고하기도 하는 등 일본에서의 인식 또한 나빴던 적이 있다. 그리고 전쟁이 실제로 일어나자 일본계 미국인들은 [[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에 반발해 니세이 부대를 조직해서 [[유럽]]으로 파병가거나, [[태평양 전쟁]]에서 통역[* 단순한 통역을 넘어서 항복 권유와 일본군 포로의 포섭같은 심리전도 수행했다.]과 암호해독관[* [[일본군]]에서는 [[미국]]은 [[일본어]]에 대해 이해를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미군의 암호해독 프로젝트 책임자인 조셉 로슈포르 대령만 해도 일본어에 능통했고 많은 일본계 미국인 덕분에 매우 빠르게 번역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계 미국인들의 출신들도 다양해서 일본군이 가고시마벤으로 암호를 보낸 걸 바로 해독할 정도였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해할 때 자문역할[* [[미국 정부]]에서 의뢰를 받아 쓴 [[국화와 칼]]의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에 가지않고 일본계 미국인들과 일본과 연줄이 있는 미국인들을 인터뷰해서 책을 썼다.]을 맡아서 틀린 보고는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사무라이 재팬]] 선수 소집 때 [[크리스티안 옐리치]]같이 차출 조건이 되는 일본계 미국인 선수들이 '''일본 내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지 않고 있다'''. 교포이면서 성적이 우수하면 자주 언급하여 대표팀 차출 폭을 넓히려는 한국 쪽과는 정반대. 그렇다고 정체성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일본 문화]]가 과거에도 미국에서 유명했던 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이 1980년대 이후 더이상 미국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못된다는 인식이 미국인들에게 자리잡히자 [[일본 문화]]가 생활속에 더욱 깊고 넓게 자리잡혔고 이에 자신감을 얻고 일본 메이저리거들의 경기를 챙겨보기도 한다. 미국으로 이민간 재일교포나 한국계 일본인들은 한국계 미국인이 되기도 하지만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이 없는 경우에는 일본계 미국인이라고 한다. 일본 내에서 차별을 피하기 위해 일본어 밖에 못하는 경우. 이는 재일[[화교]]가 다시 미국으로 이민 간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중국인 정체성이 있으면 중국계 미국인이 되고 중국인 정체성이 없으면 일본계 미국인이 된다. 시노타이계, 말레이시아계, 싱가포르계, 베트남계 화교 이민자들도 마찬가지다. 한편, 일본계 미국인으로 여겨지는 인구 가운데 오키나와계([[류큐인]])가 적지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세기 초에 오키나와는 독초인 [[소철]]에서 독을 빼내 식용해야 할 정도로 빈곤이 심각한 지역이었고, 이때문에 많은 수가 타지, 특히 미국 하와이로 이민을 와서 정착했다. 이렇게 건너온 오키나와계 미국인들은 현지에서 본토 일본계와는 다른 독자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